2022년에 시작한 나의 프로젝트는 무성하게 우거진 푸른 나뭇잎들을 담는 매일 아침의 기록입니다. 매일 매일 사진을 찍어 아무도 모르는 SNS 채널 계정에 업로드를 하며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지고 무성해지는 나뭇잎을 담습니다. 사계절의 변화와 좁은 골목길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이야기를 담고자 진행하는 혼자만의 프로젝트입니다. 사진에서의 변화는 나뭇잎뿐이지만 아침마다 제가 보는 풍경은 이렇습니다. 초등학교 약 15미터 앞에서 할머니와 잠시 멈추고 서로를 꼭 안고 교문에서 헤어지는 초등학생. 서로 모른 척하며 약간의 거리를 두고 걸어오지만 아이의 가방은 항상 아빠가 들어주는 외국인 부자. 왕관 머리띠를 쓰고 아빠와 오빠의 손을 붙잡고 신나게 걸어가는 꼬마 아이까지…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매일의 골목길 풍경을 기록으로남기는 중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더 이상 할머니와 초등학생은 서로를 안지 않아도 씩씩하게 등교할 수 있게 되었고, 외국인 부자는 서로의 간격이 점점 좁아지는 중입니다. 몇 달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건 왕관 머리띠의 꼬마 아이, 그리고 언제나 그 길을 걸어가는 저입니다. 말을 걸 순 없어도 동네 골목길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매일을 지켜보며 사진으로 담기는 나뭇잎 색의 변화와 함께 저 혼자 글을 쌓아 올립니다.
일상 속 작은 틈을 발견한 순간을 함께 나누고자 예술교육실천가들은 각자 저마다 방식으로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매일 아침 골목길을 기록하는 저의 프로젝트도 그 일환이지요. 예술가가 세상을 감각하고 인지하는 방식을 참여자와 어떻게 공유할지 고민합니다. 그리고 일상에서의 시선과 태도를 확장할 다채로운 방법을 연구합니다. 타장르 예술가와 협업하는 방식 그리고 온라인 상 새로운 툴을 함께 이용하는 방법을 궁리하며 참여자들과 함께 일상을 소중하고 새롭게 바라볼지 고민합니다. 교육기획을 위한 노력은 이렇듯 예술가 또는 예술교육 실천가에게 숨쉬듯 자연스러운 동시에 그 어떤 보상없이 스스로 채찍질하는 과정을 수반합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활동의 가치와 의미가 공모 사업 선정 결과’만’으로 판가름되는 순간 우리 중 몇은 잠시 멈추고 몇 만이 더 달려나가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나의 정성과 노력을 평가받는 것만이 우리의 활동가치가 증명되는 기준일까요.
시의성이 중요하게 대두되는 최근의 문화예술교육 현장은 우리로 하여금 잠깐이라도 멈추면 뒤쳐지는 느낌에 항상 시달리게 합니다. 때문에 제가 일상에서 그렇듯, 실천가들은 쉴 시간없이 관성적으로 일상에서마저 계속 연구와 실험을 이어나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문득 멈춰서 생각해봤습니다. 만약 우리의 활동이 필요한 것이라면 그 필요성을 다른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야만 의미가 있는 걸까요. 그보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실천들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는 의미와 방향을 공유하고, 앞으로 더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만나 각자 현재 하고 있는 것들을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정성들여 작성한 발제문과 정제된 표현들로 가득 메워진 공론장, 오픈테이블, 심포지움과 같은 거대한 자리가 아니라 실천가들이 경험하는 현장의 기쁨과 슬픔, 고민과 문제의식을 나눌 수 있는 더 작고 더 소소한 자리가 필요함을 인지한 순간. 그 강렬한 열망이 곧 소소테이블의 시작이었습니다.
소소테이블을 위해 처음 모인 장소는 성북동의 작고 아담한 벽돌집이었습니다. 높게 올라선 돌담벽을 훑으며 긴장된 마음을 쥐고 도착했던 시간을 기억합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설레임과 함께 처음 만나는 나의 친구, 동료, 그리고 선배일 그 누군가들을 궁금해하며 모임장소로 향했습니다.
문화예술교육이 추구하는 방향은 무엇인지 알고싶은 실천가.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를 탐색하고픈 실천가, 달리던 길을 잠시 멈추고 지금까지 거쳐온 길을 함께 고민하는 동료를 만나고 싶은 실천가, 참여자와 더 좋은 만남을 경험하기 위한 노력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은 실천가 등 소소테이블에서 서로 처음 만난 사이지만 각자가 조심스레 꺼낸 고민들은 결코 낯설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홀로 해결할 길 없던 여러 고민들과 의제가 많았고, 우리는 함께 모여 앉아 샌드위치를 만들며 서로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습니다.
문화예술교육이 갖는 모호함. 실천가, 기획자, 예술강사, 우리를 호명하는 이 다양한 명칭들에서 오는 정체성의 혼란. 숨쉬듯 교육기획을 하고, 교안을 짜는 치열한 순간들로부터 소모되는 시간들. 샌드위치 속 재료로 이 모든 고민들을 치환하여 구성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손으로 만든 샌드위치는 실천가 스스로인 동시에 우리의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각자가 만든 샌드위치를 먹으며 이어진 우리의 담소는 집체 연수, 인력양성 연수로는 담아내지 못하는 솔직함들로 가득했습니다. 주중에는 수업을 하고 주말에는 기획을 이어나가는 일상의 고단함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익숙한 주변 지인을 벗어나 새로운 자극을 얻을 수 있는 다른 동료들과의 만남이 필요하다는 네트워킹에 대한 의지까지, 서로를 향한 공감과 지지의 경험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